환경부, 철강·석유화학에 또 공짜 배출권… 시민사회 “배출권거래제 개편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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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제4차 배출권거래제 할당계획안, 철강·석유화학 등 탄소누출업종 여전히 ‘공짜 배출권’ 유지

오는 12일 열리는 ‘제4차 계획기간 국가 배출권 할당계획’ 공청회를 앞두고 시민사회가 철강·석유화학 등 국내 온실가스 배출 1·2위 업종에 대한 전량 무상할당 방침을 비판하며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전면 개편을 9일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14일 환경부는 산업계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제4차 계획기간(2026~2030년) 배출권거래제 할당계획안을 공개했다. 이번 방안에는 철강·석유화학 등 ‘탄소누출업종’에 대해 기존과 동일하게 ‘100% 무상할당’을 유지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발전(전기·에너지 생산) 부문은 유상할당 비중을 2026년 20%에서 2030년 50%까지 단계적으로 상향하고 발전 외 부문도 내년부터 유상할당 비중을 15%로 높이는 것과 비교할 때 여전히 미흡한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배출권거래제는 국내 온실가스 배출의 약 74%를 관리하는 핵심 제도다. 기업은 배출권을 할당받아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데, 부족하면 돈을 주고 추가 구매해야 한다. 따라서 배출권 가격이 높아야 기업이 배출을 줄이려는 유인이 생긴다.

그러나 한국의 배출권 가격은 최근 톤당 8천~9천 원으로, 유럽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칠 정도로 낮다. 이처럼 가격이 낮게 형성된 주요 이유는 낮은 국가 온실가스감축목표(NDC) 하에 산업계에 배출권을 ‘공짜’로 과도하게 나눠준 탓이다. 철강·석유화학 등 ‘탄소누출업종’은 국내 산업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 1·2위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제도 시작부터 지금까지 전량 무상할당을 받아왔다. 온실가스 규제가 강화될 경우 해외로 사업장을 이전한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 결과 이들 업종은 실제 배출량보다 더 많은 배출권을 확보해 남는 물량을 되팔아 수익까지 챙겼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설계된 제도가 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 작동한 셈이다.

이에 시민사회 연대체인 녹색철강시민행동은 9일 입장문을 내고 이번 계획이 정부의 국정과제인 ‘기후위기 대응과 산업 르네상스’와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지난 10년간 배출권거래제가 사실상 기업에 너무 많은 ‘공짜 배출권’을 제공하면서 오히려 잉여 배출권이 쌓이는 구조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5~2023년 철강·석유화학·시멘트 업종별 상위 5개 기업이 확보한 잉여배출권만 4,060만 톤CO₂e에 달한다. 또한 이렇게 쌓인 배출권 일부는 다음 계획기간으로 이월해 사용할 수 있어, 제4차 계획기간으로 넘어갈 잉여배출권은 총 약 1억4천만 톤CO₂e에 이른다. 이는 2025년 한 해 사전할당량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로, 제도의 실효성을 크게 떨어트린다는 지적이다.

국제 동향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 크다. 유럽연합(EU), 영국, 미국 캘리포니아주, 뉴질랜드 등은 발전 부문에 이미 100% 유상할당을 적용하고 있다. EU는 더 나아가 탄소누출업종의 무상할당도 점차 줄여 2034년까지 100% 유상할당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녹색철강시민행동은 “정부가 탄소누출업종을 유상할당의 예외로 남겨두고 잉여배출권을 방치한다면, 배출권 가격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산업의 저탄소 전환도 늦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전 업종의 유상할당을 확대해 탄소 가격 신호를 되살리고, 경매 수익을 기후대응기금으로 전환해 저탄소 기술 지원에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1억4천만 톤에 달하는 잉여배출권을 전량 시장안정화조치 예비분에 넣거나 거래를 제한할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며 “국제 기준에 맞는 유상할당 확대, 저탄소 기술 지원 강화만이 산업 경쟁력과 미래세대를 지키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안정화조치 예비분’은 배출권 가격을 적정 수준으로 조절하기 위해 별도로 확보해 두는 물량으로, 잉여배출권 일부가 아닌 1억4천만 톤 전량을 이 예비분에 묶어두어야 배출권의 과잉 공급을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다.

기후솔루션 분석에 따르면 탄소누출업종을 포함해 2034년까지 유상할당을 100%로 확대할 경우, 배출권 가격은 톤당 연평균 7만 원 수준으로 정상화될 수 있다. 이를 통해 2040년까지 누적 557조 원의 경매수익을 확보해 ‘공정 전환’을 지원할 수 있으며, 철강제품의 유럽연합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비용도 누적 3조4천억 원 이상 절감할 수 있다.

한편 제4차 할당계획 수립 과정에서 지역 주민을 비롯한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산업계 의견만 반영됐다는 절차적 정당성 논란도 제기됐다. 정부가 오는 12일 열리는 공청회 이전에 시민을 대상으로 한 과정 공유와 의견 청취 절차를 생략한 채 계획안을 마련했고, 공청회 이후에는 15일까지 불과 4일간의 의견 수렴 기간만 두어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김정진 당진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온실가스 감축의 핵심 수단인 배출권거래제 할당계획은 지역 주민을 넘어 전 국민의 미래와 직결된 사안”이라며 “이처럼 중요한 계획을 두고도 충분한 사전 설명과 시민 의견 수렴 절차 없이 공청회 뒤 단 4일간의 의견 접수로 마무리한 것은 환경부가 기업의 입장만 중시한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양국 광양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 역시 “막대한 탄소 배출은 기후위기의 주범이자 고스란히 국민이 감수해야 할 건강권 피해로 이어지므로, 배출권거래제 운용에는 반드시 국민의 충분한 의견 수렴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사회 공동 입장문

“배출권거래제 속 탄소누출업종 ‘공짜 특혜’, 이제는 끝내야 한다”

환경부는 지난 8월 14일 산업계를 대상으로 ‘제4차 국가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할당계획(안) 설명회’를 열고 2026~2030년간의 유상할당 비중의 골자를 공개했다. 현재 10%인 유상할당 비중을 발전 부문은 2026년 20%에서 2030년 50%까지 단계적으로 상향하고, 발전 외 부문은 15%로 상향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철강과 석유화학 등 규제 강화로 인해 해외로 공정을 이전할 가능성이 높은 ‘탄소누출업종’은 산업 보호를 이유로 유상할당 비율을 0%로 유지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정부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5대 국정 목표 중 하나로 ‘기후위기 대응과 산업 르네상스를 통해 혁신을 이룰 것’을 약속했지만, 이번 제4차 할당계획안은 그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온실가스 감축과 저탄소 산업으로의 혁신은 배출에 대한 규제 강화와 저탄소 혁신 기술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가능하며,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활용해 이를 실현할 수 있다.

2030년까지 발전부문의 유상할당을 50%까지 단계적 상향하는 우리나라 정부안에 비해, 이미 유럽연합, 영국, 미국 캘리포니아주, 뉴질랜드 등 주요 선진국들은 발전부문에 대해 이미 100% 유상할당을 부여하고 있다. 이 중 유럽연합은 탄소누출업종에 대해 2026년부터 유상할당 비중을 점차 늘려 2034년까지 유상할당을 100%로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녹색철강시민행동은 이번 제4차 할당계획안이 국제적 흐름과는 정반대로 ‘탄소누출업종에 대한 전량 무상할당 유지’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배출권거래제 운영은 낮은 국가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높은 무상할당 비중으로 인해 공짜배출권이 과잉 공급되는 구조를 낳았다. 결과적으로 다배출 산업은 잉여배출권을 통해 ‘부당이익’을 얻었고 배출권 가격은 폭락을 거듭했다.

2015년부터 2023년까지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업종의 온실가스 배출 상위 5개 업체가 확보한 잉여배출권만으로도 약 40,604,896톤 CO2e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는 정부가 높은 무상할당 비중을 유지하면서 기업들이 실질적 감축 노력 없이도 공짜 배출권으로 이익을 얻는 구조를 만들어왔음을 보여준다. 환경부에 따르면 현재 제4차 계획기간으로 이월될 수 있는 잉여배출권은 약 1억 4천만톤 CO2e로, 2025년 한 해 사전할당량의 25%를 차지하는 막대한 양이다. 향후 5년간 철강·석유화학·시멘트와 같은 탄소누출업종에 무상할당을 유지한 채 누적된 잉여배출권이 시장에 존재한다면, 배출권 가격의 정상화는 불가능하고 산업 부문의 저탄소 공정 전환도 크게 지연될 수밖에 없다.

결국 정부의 계획은 다배출 산업의 온실가스 감축을 늦추어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를 심화시키고, 현재와 미래 세대의 환경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탄소국경세 등 글로벌 탄소 규제가 강화되고, 세계 시장이 저탄소 제품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수출 경쟁력까지 스스로 약화시키는 결정이다.

해결책은 유럽연합의 탄소누출업종 무상할당 폐지 계획 등 국제 탄소시장 동향에 맞추어 전 업종의 유상할당을 확대해 탄소 가격의 신호를 되살리고, 그 수익을 저탄소 산업 전환 재원으로 활용하는 데 있다. 분석에 따르면, 2034년까지 탄소누출업종을 포함한 전 업종의 유상할당을 100%로 상향한다면 배출권 가격은 연평균 톤당 7만원 수준으로 정상화될 수 있다. 이는 2040년까지 철강제품의 유럽연합 탄소국경조정세(EU CBAM) 인증서 비용 부담을 누적 3.4조 원 이상 절감하고, 유상할당 경매수익 557조 원을 확보해 탄소누출 업종의 공정 전환을 지원하는 기후대응기금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효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환경부는 제4차 계획기간 동안 다배출 기업의 감축 노력의 진보 없이 발생한 1억4천만 톤의 잉여배출권 전량을 시장안정화예비분에 포함하거나, 거래를 제한할 수 있는 법적 조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또한 지속되는 배출권 가격 하락을 멈추고, 정부가 약속한 ‘지속가능한 혁신경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유럽연합의 탄소누출업종 무상할당 폐지 계획을 참고해 국내 배출권거래제를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도록 개편해야 한다. 제4차 계획 기간동안 탄소누출업종의 유상할당을 점진적으로 상향하고, 동시에 저탄소 공정 기술 개발 및 청정 연료에 지원을 적극 강화하는 것만이 산업 경쟁력을 지키고 미래 세대를 보호하는 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부의 결단이며, 시민사회는 지체 없는 이행을 강력히 촉구한다.

2025년 9월 9일

ASL, 광양환경운동연합, 기후넥서스, 기후솔루션, 당진환경운동연합, 빅웨이브, 충남환경운동연합, 포항환경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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