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강 산업 위기론이 팽배하다. 정부와 산업계는 산업 경쟁력 강화를 ‘저탄소 고부가가치 철강으로 전환’에서 찾는다. 산업계에 대한 단기 지원이나 당장의 통상 대응을 넘어서 철강 산업의 탈탄소는 막대한 투자와 구조적 전환을 요구하는 과제다. 한국은 세계 6위의 철강 생산국이지만, 저탄소 철강 생산에 대한 정부 정책과 지원은 주요국에 비해 매우 부족하다. 21대 대선을 앞두고 기후환경단체로 구성된 녹색철강네트워크는 ‘철강 산업의 탈탄소 전환을 위한 정책과제’를 제안했다. 새정부가 직면한 철강 산업의 이슈와 정책 과제를 다섯 차례에 나눠 소개한다. |
[위기의 K-철강, 새정부에 바란다②] 2035년 과감한 철강 탄소감축 목표 “도전적이지만 가능”
올해로 기후변화에 관한 파리협정이 체결된 지 10년을 맞았다. 2015년 196개국은 지구온난화를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억제하는 목표를 담은 파리협정에 합의했다. 이 협정은 구속력을 가지며 한국도 2016년 공식 비준했다.
파리협정의 목표 달성의 관건은 각국이 수립한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 NDC)에 달려있다. 각국 정부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5년마다 수정해 유엔에 제출해야 하는데, 새롭게 제출하는 목표는 기존보다 강화돼야 하는 ‘진전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파리협정 체결 10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여전히 증가
2015년 파리협정이 체결되던 해에 첫 번째 2030년까지의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제출됐고 2020~2021년에 두 번째 목표가 제출됐다. 올해 11월 브라질에서 열리는 제30차 유엔 기후총회(COP30) 전까지 세 번째 국가별 목표 제출이 예정돼 있다. 이번 NDC는 2035년까지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대책을 담게 되고, 유엔은 9월까지 제출을 권고하고 있다.
파리협정이 체결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지구 온실가스 배출량은 계속 상승 추세를 나타냈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2024년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지구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37.8 Gt CO2을 기록해, 전년 대비 0.8% 증가해 사상 최고치를 나타냈다. 올해 수립하는 2035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기존보다 얼마나 강화시킬지에 따라 기후위기의 시계는 달라질 것이다.
현재까지 각국이 수립한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종합해보면, 설령 이들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지구 온도는 2100년까지 2.5도 상승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매우 위험한 기후위기로 이어지는 수준으로, 파리협정에서 합의한 목표와 실제 각 정부의 목표에 커다란 간극이 있다는 의미다.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은 국제 기관으로부터 혹평을 받아왔다. 글로벌 기후 싱크탱크인 클라이밋액션트래커(CAT)는 2023년 윤석열 정부가 수립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해 “매우 미흡하다(Highly insufficient)”고 평가했다.
석탄과 천연가스 같은 화력발전 감축에 미온적이면서도 원전 확대를 내세우며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는 오히려 하향 조정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해외 온실가스 감축 비중을 높이는 동시에 산업 부문의 감축 목표는 14.5%에서 11%로 낮추며 산업계 부담을 완화시켰다.
이 기관은 “만약 모든 국가가 한국처럼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면, 지구 온도는 3~4도 상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제기관들, 한국 기후위기 대응 “최하위” 혹평
64개국의 기후위기 대응 노력을 평가한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2025’에서 한국은 63위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동해안에 신규 석유 가스전을 개발하는 ‘대왕고래’ 프로젝트 같은 화석연료 개발에 정부가 앞장서면서 정책 역행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는 아시아 최초로 기후소송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정부가 2030년부터 2050년 탄소중립에 이르기까지 온실가스 감축의 정량적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고, 미래세대에 기후위기 대응 부담을 전가해 국민보호 의무를 위반했다는 취지였다.
헌재 판결에 따라 정부는 2035년 감축 목표와 2050년까지의 로드맵을 마련해야 하고, 국회도 내년 2월까지 이를 반영한 탄소중립법 개정을 완료해야 한다.
이번 21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발표된 공약에서 ‘기후 공약’은 전반적으로 미흡한 편이다. 전력이나 에너지 공약이 그나마 눈에 띄지만, 온실가스 배출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 부문의 전환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기후위기 대응 및 산업구조의 탈탄소 전환’을 공약을 내걸었다. 철강·석유화학·시멘트를 비롯한 탄소 다배출 업종의 저탄소 공정과 기술혁신을 추진하고 기업 탈탄소 전환 지원책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관련해서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추진하고 과학적 근거에 따른 2035년 이후 감축 로드맵 수립하겠다”는 방향만 제시했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나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에서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이나 산업 탈탄소에 대한 내용을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정의로운 탈탄소사회로의 전환’을 공약하면서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2035년 NDC 70%로 상향”하겠다고 밝혔다. 산업의 기후위기 대응에 대해서는 산업단지와 대규모 전력사용 시설을 재생에너지 생산 지역으로 입지하겠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부실한 2030 감축 목표도 재검토하겠다고 제시했다.
철강 산업 부문 최대 탄소 배출원이지만, 산업계 뒤에 숨는 정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전력망 확충과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 탈탄화가 가장 중요한 과제임은 분명하다. 동시에 2030년까지 임기를 이어가는 새정부에서는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와 같은 탄소집약 산업의 전환 대책 마련에도 나서야 한다.
철강 부문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17%, 산업 부문의 40%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탄소집약 산업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3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년 대비 4.4% 감소했지만, 철강 산업은 2.4%로 상승을 나타냈다. 2022년 태풍 힌남노로 인한 침수 피해로부터 복구되면서 제철소 가동률이 올라가자 탄소 배출량도 동반 상승했다.
철강 산업의 탈탄소를 정부가 주도하지 못한다면 탄소중립 이행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간 정부는 철강 산업에 느슨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부여해왔다. 2030년 철강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2018년 대비 5% 수준으로 ‘현상 유지’에 가깝다.
이는 주요 철강사가 내세운 목표보다도 매우 느슨한 수준이다. 국내 1위 온실가스 배출기업인 포스코는 2030년 온실가스 10% 감축을 약속했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은 각각 12%와 10%로 유사한 목표를 제시했다. 정부가 도전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마련해 명확한 정책 신호를 줘야 하지만, 정작 산업계의 뒤꿈치를 따라가는 형국이다.
새정부가 수립할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서 철강 부문에 어느 수준의 목표가 설정될지가 주목된다.
한국 2035년 철강 탈탄소 “도전적이지만 가능”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파리협정의 1.5도 목표 달성을 위해서 2035년 철강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2022년 대비 44% 수준 감축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수소환원을 비롯한 온실가스 저배출 공정이 2035년 기준 쇳물 생산량의 27%를 차지하게 되는 전망이다.
단순한 장밋빛 전망이 아니다. 국내 산업계도 2027년부터 30만 톤 규모의 수소환원제철 시험설비를 가동하고 2030년 이후 상용화에 들어갈 계획이다. 철강 산업의 온실가스 감축이 어렵다는 의미로 ‘난감축’ 부문으로 분류하는 건 이제 유효하지 않다.
산업계가 전기로 투자와 수소환원제철 상용화 확대, 탄소집약 공정인 고로의 단계적 폐쇄에 나서고 정부가 이를 지원할 경우, 철강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을 1.5도 목표에 맞출 수 있다.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넥스트가 지난해 말 발표한 ‘한국 철강산업의 넷제로 로드맵 및 전략, 1.5℃ 경로 달성을 위한 5년 내의 전략’에서는 2035년 철강 산업의 온실가스를 2023년 대비 최소 60% 감축하는 시나리오를 제시하면서 이는 “도전적이지만 가능하다”고 제시했다.
포스코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의 일환으로 2035년 온실가스를 30%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2030년대 초부터 수소환원제철로의 전환을 본격화하면서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새정부가 산업계 뒤에 머물지 아니면 전환의 촉진자로 나설지가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