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강 산업 위기론이 팽배하다. 정부와 산업계는 산업 경쟁력 강화를 ‘저탄소 고부가가치 철강으로 전환’에서 찾는다. 산업계에 대한 단기 지원이나 당장의 통상 대응을 넘어서 철강 산업의 탈탄소는 막대한 투자와 구조적 전환을 요구하는 과제다. 한국은 세계 6위의 철강 생산국이지만, 저탄소 철강 생산에 대한 정부 정책과 지원은 주요국에 비해 매우 부족하다. 21대 대선을 앞두고 기후환경단체로 구성된 녹색철강네트워크는 ‘철강 산업의 탈탄소 전환을 위한 정책과제’를 제안했다. 새정부가 직면한 철강 산업의 이슈와 정책 과제를 다섯 차례에 나눠 소개한다. |
[위기의 K-철강, 새정부에 바란다③] 저탄소 제품 기준과 공공조달 제도 개선해야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인 철강 업계가 ‘반격’에 나선 것일까. 최근 철강사들의 저탄소 철강 브랜드 경쟁이 치열하다. 2023년 포스코는 탄소중립 브랜드 ‘그리닛’을, 현대제철은 저탄소 철강 브랜드 ‘하이에코스틸’를 각각 출시했다.
해외 철강사들도 저탄소 철강 브랜드를 잇따라 시장에 내놓고 있다. 세계 2위 철강사인 아르셀로미탈의 엑스카브(XCarb), 일본 최대 철강사인 일본제철의 ‘카본 중립 스틸’, 중국 철강사 HBIS의 저탄소 철강 브랜드 ‘하이넥스 스틸’과 같이 탄소배출 저감을 강조하는 추세다.
저탄소 철강 수요가 늘어나면서 철강사들이 친환경 브랜드를 앞세워 시장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2030년 저탄소 철강 수요를 2억 톤으로, 2021년 1500만 톤에 비해 10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2030년 세계 철강 전체 소비량의 10%에 해당하는 규모다.
철강사 너도 나도 저탄소 철강 브랜드 홍보… ‘그린워싱’ 제재가 주는 교훈
저탄소 철강 제품을 둘러싼 철강 업계의 마케팅이 늘고 있지만 ‘저탄소 철강’에 대한 일관된 기준이 없어 시장에 혼란을 주고 친환경 제품에 대한 신뢰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우려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 제재로 현실화됐다. 지난 4월 17일 공정위는 포스코의 친환경 철강 제품에 대한 광고 행위에 시정 명령을 내렸다. 앞서 기후솔루션은 포스코의 ‘그리닛’을 그린워싱 혐의로 2023년에 공정위와 환경부에 신고했다.
포스코가 ‘그리닛’ 브랜드 중 건축용에 해당하는 ‘이노빌트’ 제품에 대해 ‘친환경 강건재’로 홍보한 것과 관련해 실제로는 친환경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포스코는 환경에 기여하는 별도의 행위를 하는 것처럼 거짓·과장의 방법으로 홍보했다”며 거짓·과장 광고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환경부도 포스코의 해당 브랜드에 대해 일부 표현을 ‘그린워싱’으로 판단해 행정지도를 처분했다. 환경부의 그린 워싱 가이드라인'(친환경 경영활동 표시·광고 가이드라인)을 2023년 발표한 뒤 최초의 ‘그린워싱’ 판단 사례다.
정부의 느슨한 기준으로 저탄소 제품 인증이 허술하게 이뤄진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저탄소 제품으로 인증 받게 되면 ‘녹색제품 의무구매제도’와 같은 공공조달 제도를 통해 정부와 공공기관의 의무구매 대상이 된다.
철강은 2020년 기준 공공부문에서 590만 톤가량 소비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철강 내수시장의 11%에 해당하는데, 주로 건설과 선박 제조가 차지한다.
환경부의 느슨한 저탄소 제품 기준, 탄소감축 유도에 한계
환경부가 운영하는 저탄소 제품 인증 기준은 크게 두 가지다. 동종 제품의 평균 탄소배출량 미만이거나 최소 감축률 기준을 충족하면 된다. 현재 최소 감축률은 제품의 탄소배출량이 3년 전에 비해 3.3% 감축하면 인정받을 수 있게 돼 있다. 이 기준을 충족하면 동종 제품보다 탄소를 더 배출해도 저탄소 제품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는 허점이 있다.
동종 제품의 평균 배출량 미만이라는 기준도 한계가 있다. 국내 철강사가 가동하는 생산 공정이 유사하기 때문에 현재를 기준으로 평균을 내봤자 혁신 기술과 공정을 반영하지 못한다.
실제로 저탄소 제품 인증을 받은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의 제품별 탄소배출량을 보면 현재 공정의 평균 배출량에서 큰 차이를 나타내지 않았다. 전기로에서 생산되는 철강 1톤당 0.5톤의 이산화탄소가 발생되는데, 현대제철이 저탄소 인증을 받은 H형강과 철근의 경우 0.45~0.55톤 수준을 나타냈다. 동국제강이 저탄소 인증을 받은 형강과 철근도 0.49~0.56톤의 탄소 배출량을 나타냈다.
전기로 공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의 상당한 비중은 전력 소비가 차지한다. 그런데 정부가 수립한 정책에 따라 재생에너지를 비롯한 저탄소 전력 조달을 늘리면 간접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현재 환경부 기준 방식은 향후 달성할 정책 목표를 반영하지 않고 과거 데이터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실질적 탄소감축을 유도하는 데 한계가 있다.
기후에너지 싱크탱크인 넥스트는 ‘저탄소 철강 및 시멘트 수요 창출을 위한 녹색공공조달 제도 개선 방안’ 보고서에서 실효성이 낮은 최소 감축률 방식을 폐지하고 저탄소 제품에 강화된 탄소배출량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직접환원철과 같은 원료 전환이나 저탄소 전력 조달과 같은 정책 목표를 반영해 탄소집약도 기준을 새로 짜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저탄소 철강 기준을 개선한다면, 공공 부문에서 조달되는 철강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현재보다 38% 저감할 수 있다고 분석됐다. 정부 예산 지출이 실질적인 저탄소 자재 구매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아울러, 기획재정부 산하 조달청이 운영하는 ‘공공조달 최소녹색기준 제품 구매제도’에서 녹색기준 평가 항목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빠져있어 이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제도는 정부가 제품을 최소 환경기준을 충족하는 제품만 조달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전자기기, 기계설비, 건축자재 등 100개 이상의 품목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탄소배출량은 평가하지 않아 허점이 있다고 지적되어 왔다.
최근 정부도 글로벌 ‘저탄소 철강 표준’ 논의에 따라 저탄소 철강 생산 기준의 개정이 곧 산업 경쟁력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올해 초 산업통상자원부는 글로벌 산업부문의 탈탄소화를 주도하는 다자 협의체인 ‘기후클럽(Climate Club)’에 참여하면서 저탄소 철강 생산 기준, 국내 제품의 수출 경쟁력 강화 방안, 국내 제도와 국제 기준간 정합성과 같은 의제를 집중 논의했다고 밝혔다.
글로벌 저탄소 철강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저탄소 철강 기준을 강화하고 공공조달 제도를 개선하는 마중물 역할에 나설 필요가 있다. 올해 저탄소 철강 표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산업 부문의 탈탄소 전환을 촉진할 정책 변화를 만들지 새 정부로 공이 넘어갔다.